레바논으로 여행을 갔을 때 현지 사람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현지에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레바논인들은 모두 말론파 가톨릭이었지만 이스라엘을 싫어한다는 무슬림들과의 정말 몇 안 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1978년 레바논 내전에 개입한 이후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레바논을 침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이스라엘에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틀을 씌우는 것은 레바논-이스라엘 관계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일 것입니다. 아래 한국일보 만평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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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악구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사람들을 들뜨게 하거나 특정 정파를 득세하는 것 외에는 실제 문제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는 상기 한국일보의 만평이 묘사하고 있는 상황의 원인을 다종교국가로서 레바논이 갖고 있는 모순과 아랍권의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찬차리(…)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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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문제는 많은 아랍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아들이거나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돌입하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스라엘 국경의 나라들을 보라. 요르단은 6일 전쟁으로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잃고 이스라엘 전선에서 가장 먼저 g를 내세운 뒤 친미로 돌아갔다. 1971년에는 자국 내 PLO를 내쫓고 1994년에는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이집트도 사다트 때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시나이 반도를 반환받은 뒤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시리아? 레바논 내전은 이스라엘-시리아의 대리전이기도 했고, 골란 고원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잃는 것이 많은 아랍권 세속주의 독재자 아저씨들은 정치적 수사와는 별개로 실제로는 이스라엘과 몸부림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으며 이는 아사드 정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의 의제는 레바논주의와 범아랍주의, 기독교와 무슬림간의 정치적 주도권의 향배가 걸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Greater Lebanon 수립으로 다수당으로서의 기독교 지위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대부분 무슬림의 팔레스타인 난민 대량 유입은 레바논 종파 간 권력 균형을 위태롭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레바논 말론파는 PLO를 몰아낸 요르단이나 팔레스타인 난민을 가자지구로 몰아넣은 이집트와는 달리 팔레스타인 난민과 PLO에 대한 적극적인 배격 조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마침 PLO를 제대로 하고 싶었던 주변 아랍국가들 입장에서는 호재였습니다. 결국 아랍권의 강요에 의해 1969년 카이로 협정이 체결된 이후 레바논은 PLO가 레바논 남부에 사실상의 반독립국이 되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PLO는 레바논 남부를 거점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도발(말이 자주 도발이었고 Kiryat-Shmona Massacre 같은 민간인에 대한 공격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을 감행해 레바논 정부는 PLO를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또, PLO는 레바논 내전 발발 이후 내전의 주요 플레이어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레바논 내전을 방치하는 것은 자국에 적대적인 PLO가 레바논 남부에 사실상의 독립국이 되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이후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저지른 만행이 헤즈볼라를 탄생시켜 레바논-이스라엘 관계가 꼬인 원인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레바논이 PLO를 적절히 통제했다면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Greater Lebanon이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 필요한데요. 필자는 말론파 카톨릭의 레바논의 친구에게, 「그래서 GreaterLebanon을 세우길 잘한 것인가」라고, 한층 더 도발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말을 아꼈지만 적어도 스태빌리티 면에서는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어요. 결국 레바논-이스라엘 문제도 레바논의 말론파 가톨릭이 프랑스를 등에 업고 무리하게 무슬림 영역까지 파고들면서 난탈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론파 가톨릭만의 레바논으로 만족했다면 이스라엘처럼 친서방 노선을 걸으며 번영했을 것이고, 주변 아랍 국가들과 척질될 이유도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스라엘보다 유리한 위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요? 지금이라도 레바논 기독교와 무슬림이 다른 집을 꾸미는 게 낫지 않을까. 서로가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조차 때로는 서로의 행복을 위해 갈라지곤 하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상상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남과 무관하게 살기 위해 유혈사태와 빈곤을 감내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런 점에서 필자는 남북분단을 민족의 비극으로 보는 시각도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됐다고 본다. 결코 그 정도 이념 때문에 동포들이 헤어진 비극으로 치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떤 이념과 진영을 선택했는지만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운명을 극명하게 가른 적이 있을까. 또 전후 자주 체제를 택한 신생국들은 높은 확률로 비동맹주의-사회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운이 나빠졌다. 한국도 전후 미 군정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체제에서는 사회주의를, 지도자로서는 여운형을 가장 많이 지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개입이 없을 경우 이들과 같은 길을 걸었을 가능성이 특히 높습니다.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걸프 친미국가인 석유 적빈민이라고 해서 마냥 무시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라크 이란 리비아처럼 줄을 서지 않은 나라들은 석유 적자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어요. 줄을 서는 것도 실력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석유 없이도 오늘의 번영을 이뤘으니 그럴수록 자랑스러운 역사적 경험이 아니겠는가. 한일협정도 부끄러운 역사로 취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동맹 진영에서 성행한 반제국주의, 반서방 프로파간다는 정치적으로는 달콤하겠지만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를 풍요롭게 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보다는 당면한 굴욕을 감수하고 조용히 힘을 기르되, 구식민 지배국과 적어도 인민의 국민소득 면에서는 비등한 우리 역사가 훨씬 멋지지 않은가. 레바논 얘기를 하다가 다른 데로 새었어요. 제5화에서는 주로 레바논의 크리스트교도에 초점을 맞췄지만, 지금부터는 레바논의 무슬림-특히 시아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왜 필자가 "Greater Lebanon"의 출범이야말로 레바논의 현대사 비극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