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숙 현(서울 인디예술공간 저자)newpublicar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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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미테 지역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예술 공간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떠나기 전 서울에서 들었다. 공간의 이름은 논 베를린(NON Berlin).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유일한 아시아의 예술 공간이 베를린을 부정하고 있다니.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목하는 예술도시 베를린에 한국의 전시공간이 있다는 커뮤니티를 접한 사람들이 으레 갖고 있는 듯한 기대를 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호기심이 이에 비례하여 발동하였다.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아졌다. 베를린 현지에서 논한 베를린의 디렉터 신이도와 최창숙을 만나 직접 들은 대답은 오히려 더 풍부한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논베를린의 '론'은 공자의 논어, 즉 '논하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어 유럽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아시아 현대미술 담론(discourse)을 생산하겠다는 포부로 2014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디아스포라의 도시이자 아방가르드한 현대미술실험에 관대한 베를린이지만 아쉽게도 아시아의 컨템퍼러리 예술에 대한 관심은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동양인 예술가가 유럽에서 자기 목소리를 완전히 낼 수 있는 예술적 성취를 이룬다는 것은 모국보다 배력이 더 필요한 일입니다. 또한 베를린은 너무 많은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열려 곧 관객의 기억 속에 묻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어필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예술공간에 주어집니다.논베를린의 대표 프로그램은 퍼포먼스 프로젝트 'NON론DA다{PLAY}' 시리즈입니다. '놀다(play)' 시리즈의 기본 모토는 현대아시아 미술의 담론을 형성하는 강의 프로그램이지만, 참여 아티스트들은 말 그대로 '놀이를 하듯' 자유로운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관객들은 직간접적으로 퍼포먼스에 참여합니다. 'NON론DA다{PLAY}' 시리즈는 현재까지 7회 진행되었으며 그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시리즈는 2회째 진행된 '더 김치 세션(The Kimchi Session)'입니다. 한국 아티스트 양진우와 디렉터 신이도, 그리고 4명의 타악 연주가로 구성된 '심포닉 퍼커션 베를린(Symphonic-percussion Berlin)'팀이 참여했다. 한국 남성 2명이 김장을 위해 마늘을 갈아 무를 사용하는 동안 퍼커션 팀이 타악기와 도마와 칼을 활용해 리듬과 사운드를 만들어내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퍼포먼스의 참신성과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음식과 예술의 협업이라는 트렌드가 적절히 반영되어 성황리에 마쳤다. 이후 베를린 푸드위크(2015)에 초청을 받아 앙코르 세션을 선보였다.7번째 노는 시리즈 'Love! The hidden voice'도 흥미롭습니다. 스위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무용가 장수미와 사운드 아티스트 미리엄 지벤슈타트(Miriam Siebenstädt), 공간 디자이너 김재경의 협업 퍼포먼스였습니다. 아직도 아시아 여성이 사회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이 금기시되는 모순점 때문에 작품이 구상되었다고 합니다. 퍼포먼스가 시작되자 그는 말 그대로 힘껏을 외친다. 온몸이 탈진할 때까지 목청껏 소리 지르며 관객들과 함께 호흡합니다. 사운드 아티스트는 이에 맞춰 사운드를 이끌어 낸다.이곳에서는 줄톱, 놋쇠톱, 바이올린줄 등의 조형물을 동원합니다. 이런것들은전형적인악기가아니라일상에서특정기능만을담당하는것으로일상에서는자신의모습을치밀하게전달할수없습니다. 그런 도구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와 사회와 일상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병치되는 과정도 의미심장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시리즈로 논베를린은 2016년 처음으로 베를린 프로젝트 스페이스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베를린에서 수백 개의 예술 대안 공간 중 30개만이 티켓을 받을 수 있는 이 축제에 참가하는 것은 모든 공간의 낭만입니다. 그런 점에서 참여한 공간 중 유일하게 아시아성을 논하고 있는 논베를린의 참여는 그들의 쾌거이자 우리의 자랑입니다.논베를린의 모토는 '아시아 현대미술 플랫폼'입니다. '현대미술에서 아시아성이란 무엇인가?' 혹은 '아시아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지고 항해 중에 있습니다. 다만, 단지"베를린의 안의 한국 예술 카페"으로서 정체성을 제한하는 실수는 피하고 싶습니다. 이를 실수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국제무대에서 국가 간 예술 교류를 목적으로 출범한 시도가 정체성과 관련된 특유의 순결성을 고집하며 다시 새로운 섬으로 고립되는 사례를 자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논베를린은 베를린을 비롯한 유럽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간 교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아시아 아트 토크쇼 2016(Asian Art Talk Show 2016)은 이러한 이슈를 집약적으로 다룬 행사로, 뾰족한 결론과 협상을 이끌어내는 자리라기보다는 아시아의 현대미술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려는 논베를린의 초기 목적에 맞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시아 현대미술이 유럽으로 넘어온 배경과 역사가 먼저 언급됐고, 현대 베를린 미술관과 미술협회 등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이 어느 정도 위치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현대미술에서 아시아성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논의됐다.최근 논베를린은 한국과의 교류를 확장하고 네트워크를 갖추는 데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성과 중 하나가 작년부터 시작된 경기창작스튜디오 협업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젝트입니다. 경기창작스튜디오에서 아티스트를 선별하면 논베를린은 베를린에서 작가의 입주공간과 전시 등 작업발표를 지원해준다. 해외무대를 손꼽아 기다리는 국내 작가들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첫 입주 작가는 그너(GuNa) 작가로서 한 달 레지던스 기간을 거쳐 지난해 11월 논베를린에서 'My black brown' 전시를 진행하였습니다.최근에는 아시아의 현대미술에 대한 서구의 인식이 조금 나아졌다고 합니다. 문화 연구에서는이 시대가 포스트 포스트 제국주의 시대, 탈 오리엔탈리즘 시대라고도 규정합니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본거지이자 주무대인 북미와 유럽의 아시아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전합니다. 어떤사람이그럼도대체정말한국현대미술은뭐야?라고물으면다시말을잃게됩니다. 매듭이 많은 도드리표의 질문에 대해 최근 한국 현대미술은 탈출에 대한 치열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동시대성 물성을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수입된 서양미술로 시작된 한국미술의 정체성 연구를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아티스트에게 해외 교류의 희망을 넘어 일종의 의무가 주어진 시대입니다. 논베를린 같은 공간이 중요할 뿐이죠. 다만, 지속성에서 경제적인 인프라가 담보되지 않는 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안예술공간이 가지는 영원한 딜레마입니다. 제발 논베를린이 크고 작은 역경을 모두 물리쳤으면 합니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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